[더 라이프이스트-구건서의 은퇴사용설명서] '생전 장례식'을 해보자

입력 2024-04-16 17:43   수정 2024-04-16 17:44


'생전 장례식'이라는 말은 죽은 후 하는 ‘장례’와 살아있다는 ‘생전’이 합쳐진 말로, 상반되는 뜻 때문에 어색한 단어지만 최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생전 장례식'은 형식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 기념행사를 치르는 것이다. 한 취업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3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약 70%가 죽기 전에 즐거운 파티 분위기로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본에서도 세상을 떠나기 전 친척,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별 행사가 번지고 있다. 프로레슬러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이노끼는 75세 되던 해 스모 경기장으로 잘 알려진 료코쿠 체육관에서 이별 파티를 했다. 또 인생을 마무리 하는 활동인 ‘슈카쓰(終活)'도 늘어나고 있다. 유언장 작성, 연명치료 거부, 재산 정리, 생전 장례식 등을 도와주는 회사나 변호사도 늘어나고 있다. 예쁘게 만든 묘지 견학도 다녀오고, 유골을 뿌리는 체험도 하면서 온천을 즐기고 돌아오는 여행도 있다.

서구에서도 살아서 하는 장례식(free funeral)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KPMG의 유진 오켈리는 2005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석 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마지막 100일을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은 이들과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식사를 하거나 전화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남은 재산은 암 치료 재단에 기부하고 정리했다. 2006년 발간된 ‘인생이 내게 준 선물’이 그의 임종 매뉴얼인 셈이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웰 빙(well being)이라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잘 늙어가는 것이 웰 에이징(well aging)이고, 잘 죽는다는 것이 웰 다잉(well dying)이 된다. 웰 다잉은 익숙한 환경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생전 장례식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당연한 순서이고, 누구나 시간이 되면 떠나야 하는 운명일 뿐이다. 죽은 후 자식들이 해주는 장례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은 다음에 술 한 잔 올린다고 내가 먹을 수가 있나. 죽은 다음에 리무진 차를 타는 것이 무슨 호사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영혼이 저 세상으로 가든, 이승에서 떠돌든 내 육신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것을. 그러니 살아있을 때 보고 싶은 사람, 신세진 사람, 가족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생전 장례식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디지털책쓰기코칭협회 가재산회장은 책을 한 권 출간해서 출판기념회를 ‘한국형 사전 장례식’으로 치르는 방식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한다. 자서전이나 평소 자신이 쓰고 싶은 분야의 책을 한 권 쓰고, 출판기념회를 핑계 삼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지막 축제이자 세레머니를 펼치자는 것이다. 특히 팔순이나 미수를 기념해서 보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들을 초청한다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것이다.

필자도 ‘연명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 놓았으며,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아닌 내가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은 마음이다. 세상사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전 장례식을 멋지게 한 다음, 실제로 죽고 나면 화장 후 유골은 자주 산책하는 언덕 위의 소나무 아래 묻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새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다는 사실과 함께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구건서 심심림 대표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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